이 후 정부와 기업은 라면의 맛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는 <라면 무료 시식회>가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1965년 정부는 강력하게 혼·분식 장려 정책을 폈습니다. 이 정책은 라면 대중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1967년 <대한뉴스>에서는 이렇게 방송하였습니다. '분식이나 혼식하면 무슨 억지소리 같이 들리지만 사실은 쌀만 먹는 것보다도 비타민 등 영양가가 더 많기 때문에 우리 건강에 좋은 것이다.' 1967년 <매일경제>에서는 '라면은 영양이 풍부하고 고칼로리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때 라면은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결혼식 날 국수 대신 라면을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라면은 부담되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독특한 라면 요리법이 있었습니다. 이 요리법은 라면보다 국수를 더 많이 넣고 된장, 고추장을 풀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음식을 '나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라면 본연의 맛은 사라졌지만 온가족이 배불리 먹었던 음식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비닐봉지가 흔치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라면봉지 또한 귀하였습니다. 한 신문에서는 라면봉지의 활용법을 자세히 소개하였으며 라면봉지는 살림살이에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1970년대 라면의 인기는 급상승하였습니다. 1971년에는 라면과자도 등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바삭하고 고소한 라면과자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1972년에는 한국 최초의 컵라면이 출시되었습니다. 거리에 컵라면 무인 판매기 또한 등장하였습니다. 라면이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라면을 만드는 업체도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라면열풍으로 라면 유행어부터 퀴즈까지 있었다. 1985년에는 제조기술을 전수받은 일본에 라면을 수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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