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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 진실2

역사 이야기

by NomadicAdventurer 2020. 7. 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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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달과 평강의 결혼에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는 동화같습니다. 최고 신분의 공주가 어떻게 바보 온달과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정리에는 온달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는 공손 온씨들이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문중에서 세운 온달장군의 사당이 있습니다. 사당의 이름은 <사현사> 입니다. <사현사>에서는 매년 3월 온달의 추모제가 열립니다. 온달을 기리는 <신도비>에는 그가 고구려의 장군으로 군 고위 지위관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도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름은 달이요. 성은 온씨이니. 평온에서 나온 어른이시라 고구려 평원왕 25대 왕의 부마(사위)라.' 족보를 살펴보면 그의 출신성분과 집안내력은 자세히 나와있지 않습니다. 559년 평원왕은 왕에 올랐습니다. 평원왕은 계속되는 왕의 쟁탈전 시대에 살았습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이후 극심한 내분은 겪게 됩니다. <일본서기>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 안장왕이 살해되었다. 고구려에 대란이 일어나서 녹군계와 세군계가 서로 싸워 세군계의 사망자가 이천여 명이 넘는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시월에 환도승의 간주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간주리의 반란>은 고구려 최초의 반란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평원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통적인 고구려 귀족 대신 신진세력을 적극적으로 등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신진세력들은 장수왕 때 새로 도읍을 옮긴 평양성을 중심으로 등장했습니다. 신진세력의 대표 인물로는 <을지문덕>이 있습니다. <온달>도 평원왕 때 등장한 신진세력이었습니다. 고대사회 속에서는 신분질서가 철저하게 지켜지며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낮은 신분층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온달의 진출도 평원왕대의 외부적 위기 속에서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열려져 있고 온달도 군사력을 통해서 성장했을 것이다로 추측됩니다. 평강공주와 온달의 결혼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라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There is a secret behind the marriage between Ondal and Pyeonggang. Stupid Ondal and Princess Pyeonggang's love story is like a fairy tale. How could a princess of the highest rank marry a fool Ondal? In Woljeong-ri, Geumgu-myeon, Gimje-si, Jeollabuk-do, there is a village where the polite Ons who have Ondal as their ancestors live together. There is a shrine built by General Ondal in the middle of the house. The name of the shrine is Sahyeonsa. The Ondal Memorial Festival is held in March every year. Ondal's "Shindobi" recorded that he became a high-ranking military officer as a general of Goguryeo. This is what the stele says. "His name is Moon. His last name is On. He is an adult from the serenity, and he is the son-in-law of the 25th king of the Plains of Goguryeo." According to the genealogy, his family background and family background are not detailed. In 559, King Pyeongwon was crowned king. King Pyeongwon lived during the period of continuous battle for kings. Goguryeo suffered severe internal strife after King Gwanggaeto and King Jangsu. In this chaotic period, King Pyeongwon actively recruited new forces instead of traditional Goguryeo aristocrats to strengthen his royal authority and used them as his base of support. At that time, the new forces of Goguryeo emerged around Pyeongyangseong Fortress, which was newly relocated during the reign of King Jangsu. Eulji Mundeok is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new generation. Ondal was also a rising star during the reign of King Pyeongwon. In ancient societies, it was not easy for the lower class to do politics because the order of status was strictly observed and operated. Ondal's entry into the field is also believed to have opened the door for fighters to actively engage in the external crisis of the Plain Kingdom, and Ondal may have grown through military force. The marriage between Princess Pyeong-gang and On-dal was possible because of this political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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